'사랑, 상실 그리고 사명'…사진기자들이 전하는 우크라전 3년

러시아 국경 근처 수미 북동부 지역의 어느 불타는 가스 저장소 앞에 서서 지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긴급 구조대원

사진 출처, Valeria Demenko/DSNS

사진 설명, 러시아의 공격으로 불길에 휩싸인 수미 북동부 소재 가스 저장소 화재 현장에 출동한 우크라이나 긴급 구조대원의 모습
  • 기자, 조지 버크
  • 기자, BBC News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본격적으로 침공한 지난 3년간 사진작가 수백 명은 최전선과 민간 지역에서 이번 전쟁이 인간에게 미친 영향을 카메라로 기록했다.

일부 사진은 2022년 2월 이후 우크라이나 상황과 관련한 BBC의 보도에 등장하기도 했다. 사진작가들로부터 사진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블라다, 코스티안틴 리베로우 부부

전면전 이전 리베로우 부부는 흑해 연안 항구 도시 오데사에서 결혼 및 인물 사진을 주로 찍었다.

그렇게 "사랑 이야기를 포착하다가 러시아의 전쟁 범죄를 기록하는 일"로 옮겨가게 되었다는 게 블라다의 설명이다.

블라다는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 지난 2023년 도네츠크 지역을 찾았다가 폭발로 인해 옆구리에 파편이 깊히 박힌 것이다. 의료진은 제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2024년 8월 14일 우크라이나 북동부 수미 지역에서 포착된 두 군인의 모습. 총알 자국이 난 트럭 옆에서 군복 차림의 한 군인이 다른 군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사진 출처, Kostiantyn Liberov/Libkos via Getty Images

사진 설명, 최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 벌인 공세로 우크라이나 군도 큰 피해를 입었다

2024년 여름 리베로우 부부가 촬영한 이 인상적인 사진은 쿠르스크에서 러시아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 측이 벌인 공세에 관한 BBC의 기사 사진으로도 사용되었다.

동료가 전사한 공세에서 살아 돌아왔으나 절망에 빠진 한 동료 군인을 위로하는 군인의 모습이다.

리베로우 부부는 이 사진이 공세 작전을 둘러싼 우크라이나 군 내 혼란을 잘 보여준다고 말한다.

코스티안틴은 "우크라이나 영토 안에서 조국을 지키는 것보다 러시아 땅에서 공세를 벌이다 전우를 잃는 게 더 힘들다"면서 "이 사진이 내게 주는 감정이 있기에 이 사진을 찍게 되었다. 그 당시 상황에 대해, 이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많은 것을 말해주는 사진"이라고 덧붙였다.

이렇듯 감정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는 장면을 사진으로 담는 작업은 현지 사진기자들을 크게 뒤흔들어 놓는다. 블라다는 "너무 고통스럽기에 동료 사진기자들과 이에 대해 잘 말하지 않는다"면서 "너무나도 힘든 상황이다. 그 누구도 과연 해결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한편 블라다는 지난 2023년 도네츠크 아우디우카에서 우크라이나 '화이트 앤젤스('하얀 천사들'이라는 뜻)' 경찰 부대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러시아 군이 도시를 점령하기 이전, 남아 있는 주민들에게 피난 가자고 설득했으나 결국 실패한 뒤 돌아서는 모습이다.

2023년 10월 30일 동부 아우디우카의 불탄 건물 앞에서 포착된 ‘화이트 엔젤스’ 소속 경찰차와 경찰관

사진 출처, Vlada Liberov/Libkos via Getty Images

사진 설명, 우크라이나 '화이트 엔젤스' 소속 대원들은 종종 최전방 마을이 점령되기 전 마지막 순찰을 담당하고는 한다

이 이야기 또한 24시간 이어진 러시아의 폭격을 다룬 BBC의 기사로 다루어졌다.

한 남성이 경찰서로 연락해 불에 타버린 건물 지하실에 머무르는 자기 형제를 대피시켜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원들이 출동했으나 그곳을 떠나기 거부했다.

블라다는 "그리고 그다음 날 너무 폭격이 심해서 우리는 다시 돌아가지 못했다"면서 "상황이 훨씬 나빠졌고, 우리는 그 남성이 살아있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고 회상했다.

한편 리베로우 부부는 수많은 고통과 상실의 순간을 기록하면서 기쁨의 순간에 대해 더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10년 넘게 조국을 위해 싸워온 우크라이나의 군인 드미트로가 아내의 출산 이후 함께 한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우리는 전쟁터의 참호 안에서 그의 사진을 찍곤 했습니다. 크고 용감한 군인인 그가 자그마한 어린 딸을 품에 안고 울고 있는 모습을 보다 보면 그와 같은 군인들이 이러한 순간을 위해 싸우고 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들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우크라이나인들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죠."

2024년 3월 23일 키이우 ‘KNP 출산 센터’에서 촬영된 모습. 군복 차림의 드미트로가 분만실에서 아내와 갓 태어난 딸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Kostiantyn Liberov/Libkos via Getty Images

사진 설명, 우크라이나의 가장 강인한 군인들도 전투에서 벗어나 기쁨의 순간을 맞이하곤 한다

발레리아 데멘코

사진작가 발레리아 데멘코는 2016년부터 우크라이나 북동부 수미 지역의 '국가 응급 서비스(DSNS)'팀의 활동을 기록해왔다. 그리고 현재는 러시아의 포격으로 피해를 본 지역에 파견된 구조팀과 함께하고 있다.

"늘 어렵습니다 … 어떤 위험이 닥칠지 알 수 없으니까요. 특히 주거용 건물이 공격당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데멘코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로 러시아의 포격으로 무너진 5층짜리 건물에 아직 안에 있는 주민들을 위해 구조대원들이 출동하는 장면을 꼽았다.

2024년 3월 13일, 수미 지역에서 5층짜리 주거용 건물이 붕괴된 후, 소방관 2명이 연기와 먼지로 가득한 현장에서 건물 잔해를 치우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Valeria Demenko/DSNS

사진 설명, DSNS 대원들은 미사일이 날아든 기반시설이나 건물 파괴 현장에 보통 가장 먼저 도착하곤 한다

DSNS 대원들은 4일간 꼬박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시신 4구를 수습했으나, 실종된 어느 소녀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

"건물 잔해에서 인형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 아이가 살고 있었다는 뜻이겠죠. (사라진 아이가)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대원들 모두 정신적으로 몹시 지친 상태이지만, 데멘코는 이들의 노력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우리는 평화로운 우크라이나 국민을 향한 러시아의 범죄를 기록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2024년 10월 어느 밤, 러시아 미사일 공격으로 건물이 불길에 휩싸인 현장에서 포착된 소방관의 모습

사진 출처, Valeria Demenko/DSNS

사진 설명, 데멘코는 "눈 깜짝할 사이 잃었다"며 가족을 찾아 헤매던 한 남성을 기억한다

알렉산더 에르모첸코

알렉산더 에르모첸코는 지난 11년 동안 동부 도네츠크 지역에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우크라이나의 전쟁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에서도 종종 보도를 이어왔던 에르모첸코는 "내 고향에서 전쟁의 모습을 촬영하게 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적이든 아군이든) 전선 양쪽의 파괴된 집 주인의 얼굴에서는 늘 같은 두려움이 포착됩니다. 누구든 피는 똑같이 붉은색임을 보여주는 게 중요합니다."

한편 크렘린궁이 국제 언론인들의 접근을 제한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언론사 대부분이 국가가 운영하는 형태이기에 BBC는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들에 대해서는 접근하기 어려웠다.

BBC는 이 기사에 기여할 수 있는 러시아 소재 사진작가들에게도 연락했으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2022년 2월 21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의 한 광장에서 친러시아 인사들이 러시아 국기를 흔들며 거리에서 축하 행사를 하고 있는 모습. 하늘에서는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다

사진 출처, Alexander Ermochenko/Reuters

사진 설명, 러시아의 본격적인 침공 3일 전에 촬영된 사진. 친러 인사들이 도네츠크를 독립된 국가로 인정한다는 러시아의 발표에 축하 행사를 벌이고 있다

위 사진은 에르모첸코가 2022년 2월 21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도네츠크의 독립을 인정하자 기뻐하는 친러 인사들의 모습을 포착한 모습이다. 이 운명적인 순간을 보도한 BBC의 기사 사진으로도 사용되었다.

에르모첸코는 이 사진을 어떻게 "우연히" 찍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카메라를 들어야겠다는 사진작가의 찰나의 결정이 잠재적으로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2022년 4월 25일, 동부 마리우폴의 맑고 푸른 하늘 아래 반쯤 무너진 마리우폴 극장 앞 도로를 걷고 있는 남성의 모습

사진 출처, Alexander Ermochenko/Reuters

사진 설명, 2022년 3월, 수백 명이 머무르던 마리우폴 극장 건물은 러시아의 폭격으로 반쯤 무너졌다. 한 남성이 그 앞 도로를 지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에 따르면 2022년 3월 러시아 전투기가 마리우폴 극장을 폭격하여 300명이 사망했다.

그다음 달, 에르모첸코는 BBC 보도에 실린 이 사진을 촬영했다. 에르모첸코는 대량학살의 여파 및 그럼에도 이어지는 일상을 함께 전달하고자 했다.

에르모첸코는 "정말 완전한 파괴였다"면서 "9층짜리 건물이 파괴된 모습은 마치 할리우드 영화 세트장같았다. 그러나 파괴된 것은 실제 건물이었고, 최근까지도 사람들이 머무르던 곳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웃 거리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삶은 계속된다는 점이 가장 놀라웠습니다. 주민들은 차분해 보였지만,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2022년 8월 4일, 러시아가 지배하는 남부 자포리자 엔너호다 소재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 앞 철조망 울타리 근처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러시아 군인의 모습

사진 출처, Alexander Ermochenko/Reuters

사진 설명, 2022년 3월 러시아가 점령한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는 전쟁 내내 주요 공격 대상이었다

위 사진은 2022년 11월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 포격 사건에 대한 BBC 생중계 중 사용된 기사 사진으로, 전쟁 상황을 카메라에 담는 행위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준다.

에르모첸코는 "당시만 해도 해당 발전소를 담은 사진이 거의 없었다"면서 "사진 속 군인들의 모습으로도 잘 느껴지지만 해당 발전소의 경계는 삼엄했다"고 했다.

사진작가들이 처한 상황이 쉽지는 않으나, 에르모첸코는 "전쟁은 내 커리어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내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 그렇기에 아무리 어려워도 계속 이 일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알리나 스무트코

2024년 7월, 도네츠크 소재 최전선 근처 토레츠크에서 한 주민이 경찰차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경찰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Alina Smutko/Reuters

사진 설명, 알리나 스무트코는 2024년 7월 러시아의 공격이 임박한 가운데 도네츠크 토레츠크 지역에서 '화이트 엔젤스' 장교가 어느 주민에게 도움을 주고자 다가가는 모습을 포착했다

수도 키이우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알리나 스무트코는 사진작가로서의 활동 및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이번 전쟁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해한다.

"지난 3년 동안 저는 러시아의 미사일과 드론이 거의 매일 이 도시를 공격하는 걸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부모님, 아이들, 친구, 동료들에 대해 걱정할 수밖에 없었죠."

침실 창문을 통해 이웃집이 미사일에 피격되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스무트코는 자신의 집이 온전하다는 것에,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이 살아 있다는 것에 행운이라고 느낀다.

2023년 6월, 우크라이나 중부 크리비리흐 소재 어느 아파트 건물을 덮친 폭격 이후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주민들이 담요를 둘러쓰고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Alina Smutko/Reuters

사진 설명, 2023년 6월, 젤렌스키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한 중부 크리비리흐에 러시아의 미사일이 떨어졌다. 이에 수많은 주민들이 아파트에서 대피해야 했다

전쟁 초기만 해도 스무트코와 주변 친구 및 가족들은 매일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곤 했다. 그러나 너무나도 자주 발생하는 공세로 인해 주민들은 전쟁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가능한 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야 했다.

스무트코의 일 또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우리는 이 침공 기간 동료들, 특히 사진기자들이 죽거나 다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우리 팀에서도 동료 하나가 사망했으며, 중상을 입은 이도 있습니다."

2024년 3월, 공습이 벌어진 가운데 극장 안 모습을 묘사한 지하철역 내 벽화 앞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남성의 모습

사진 출처, Alina Smutko/Reuters

사진 설명, 공습 경보가 내려지면 종종 주민들은 키이우의 지하철역으로 피신한다. 한 남성이 극장 안 모습을 묘사한 지하철역 내 벽화 앞에 앉아 있다

스무트코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지나치게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전쟁의 참상을 전 세계와 공유하는 일은 중요하다고 믿는다.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진 한 장으로 전쟁을 멈출 수 있다는 생각은 믿지 않습니다. 그럴 수 있었다면 이곳에서 이토록 많은 생명이 사라지지는 않았겠죠."

"저는 여전히 기록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사진으로 남지 않은 일은 결국 일어나지 않은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 저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